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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병마용 1호갱
Zouzou 이야기 · 역사

우물을 파다 군대를 찾았어요

사진: CEphoto, Uwe Aranas · CC BY-SA 3.0

1974년 시안 근처에서 우물을 파던 농민들이 흙 조각을 찾았어요. 진시황의 군대였고, 그들이 지키는 무덤은 아직 열리지 않았어요.

2026-09-28에 아래 출처로 확인했어요 · 3분 분량

1974년 봄, 시안 동쪽의 밭은 바싹 말라 있었어요. 리산 기슭의 시양촌에서 농민 양즈파와 형제들, 이웃 왕푸즈가 우물을 파기로 했어요. 2미터쯤 파 내려가자 삽 끝에 딱딱한 것이 걸렸어요. 구운 흙이었어요. 이어서 조각이 더 나오고, 작은 청동 화살촉도 나왔어요.

마을에서는 아무도 그게 뭔지 몰랐어요. 밭 아래 병사들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도, 그런 걸 적은 옛 책도 없었거든요. 조각들은 그냥 흙더미에 버려질 수도 있었어요. 실제로 고고학자들은 나중에 근처에서 더 오래된 무덤들을 찾았는데, 그 무덤을 판 사람들은 이미 도용에 부딪히고도 그냥 흙과 함께 다시 묻어 버렸던 것으로 보여요. 이번에는 소식이 린퉁현 문화관의 자오캉민에게 전해졌어요. 그는 마을로 와서 농민들이 찾은 조각을 모두 모으고, 이미 팔려 나간 화살촉까지 되사들인 뒤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건 실물 크기의 병사였어요.

조각을 맞춰 다시 복원 중인 병사들
조각을 맞춰 다시 복원 중인 병사들사진: Richardelainechambers · 퍼블릭 도메인

구덩이 하나, 그리고 군대

그해 7월에 정식 조사가 시작됐어요. 무엇이 묻혀 있는지 알아내는 데만 1년 넘게 시굴을 해야 했어요. 1호 갱 하나만 해도 길이 230미터, 너비 62미터예요. 시굴에서 나온 도용 밀도로 계산해, 박물관은 이 안에 흙으로 만든 병사와 말이 약 6,000점 있다고 추정해요. 열한 줄의 긴 통로에 늘어서 있고, 사이사이에 진짜 청동 무기가 놓여 있어요.

가까이에서 구덩이가 두 개 더 나왔어요. 하나는 기병과 전차, 무릎 꿇고 활을 쏘는 궁수가 있는 곳이고, 더 작은 하나는 장교들이 모인 지휘소처럼 보여요. 네 번째 구덩이는 비어 있었는데,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발굴된 인물상은 2,000점이 넘지만, 군대의 대부분은 아직 땅속에 있어요.

가까이서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에요. 몸은 한정된 종류의 틀로 찍은 부품을 조립했지만, 얼굴과 머리 모양, 수염, 허리띠는 손으로 다듬어서 대열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로 가득해 보여요. 원래는 빨강, 초록, 파랑, 분홍, 그리고 오늘날 ‘한자색(漢紫)’이라 부르는 안료로 화려하게 칠해져 있었어요. 시안의 건조한 공기 속에서는 흙을 걷어 내고 몇 분 만에 채색이 말려 올라가 떨어지곤 해서, 발굴이 이렇게 느린 이유 중 하나가 돼요.

Rows of terracotta warriors in Pit 1 of the Terracotta Army museum시안의 명소병마용 秦始皇帝陵博物院(兵马俑)중국 최초의 황제 무덤을 지키는 실물 크기의 흙 병사 수천 개.

사마천이 남긴 기록

이 군대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고, 서쪽으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거대한 흙무덤이 있어요. 그 아래가 영정의 무덤이에요. 진나라 왕이었던 그는 기원전 221년까지 나머지 나라들을 모두 정복하고 스스로 ‘시황제’, 곧 첫 번째 황제라 칭했어요.

이 무덤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약 100년 뒤 역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가 유일해요. 그에 따르면 황제가 열세 살 소년으로 즉위하자마자 공사가 시작됐고, 천하를 통일한 뒤에는 전국에서 70만 명이 넘는 죄수와 노역자가 보내졌어요. 이들은 지하수층을 세 겹이나 뚫고 내려가 무덤방을 구리로 둘렀어요. 궁전과 관리들, 진귀한 보물로 그 안을 가득 채웠고요. 장인들은 누가 파고들면 저절로 쏘는 쇠뇌를 설치했어요.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어 흐르게 했고, 천장에는 하늘의 별자리를, 바닥에는 땅의 지형을 갖췄어요. ‘인어의 기름’으로 등불을 밝혀 오래 꺼지지 않게 했는데, 보통 고래나 물범 기름으로 해석해요. 사마천은 황제를 묻은 뒤 무덤의 비밀을 아는 장인들을 안에 가둬 버렸다고도 적었어요.

오랫동안 이 이야기는 과장처럼 들렸어요. 그런데 봉분 위 토양을 조사해 보니 수은 농도가 유난히 높게 나왔고, 많은 학자가 이를 사마천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봐요. 물론 다른 원인을 드는 학자도 있어요. 그리고 반전이 하나 있어요. 무덤을 그렇게 자세히 적은 사마천이 흙으로 만든 군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병마용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발견이었어요.

아무도 열지 않은 무덤

봉분 자체는 한 번도 발굴된 적이 없어요. 고고학자들은 주변에서 성벽과 문터, 건물터, 그리고 청동 마차와 흙으로 만든 곡예사와 관리, 돌 갑옷, 청동 물새가 들어 있는 수백 개의 구덩이를 확인했어요. 봉분도 과학 장비로 조사했고요. 하지만 무덤방은 여전히 닫혀 있어요. 중국 문화재 당국은 먼저 연구와 보존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공기에 닿으면 사라지는 채색도 그중 하나예요.

그러니 그 아래 정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사기』에는 진나라가 망한 뒤 반란군 지도자 항우가 이 무덤을 파헤쳤다는 비난도 적혀 있는데, 누군가 정말 무덤방까지 들어갔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이에요. 당분간 황제는 비밀을 지키고, 그의 군대는 보초를 서요.

지금 가 보면

지금은 구덩이마다 커다란 전시관이 세워져 있어서, 참호 속에 선 병사들을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요. 가끔은 그 사이에서 일하는 고고학자들도 보여요. 무료 셔틀버스가 병마용갱과 진시황릉 유적공원을 오가는데, 거기서 나무로 덮인, 아직 아무도 열지 않은 봉분을 볼 수 있어요. 입장권과 가는 방법은 병마용 페이지를 참고하세요.

이 이야기 속 장소

출처

전설은 전설로 소개해요. 역사학자들의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그렇다고 밝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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